고정관념 vs 유연한 사고

세상의 많은 충돌은 고정관념으로부터 생긴다.
기준과 또 다른 기준이 만날 때 합치되면 평화요, 합치되지 않으면 충돌이다.

구정 명절을 앞두고, 목금토일 나흘간 너무도 밀린 일을 정리해야했다.
나흘간 계획을 하고, 머리가 맑아지도록 푹 쉬고 밀린 일들을 정리하려 했다.

이로 인해, 가족 및 친지와 함께 제사를 지내야하는 의무는 포기해야 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

고정관념 vs 유연한 사고

 

내 입장에서는 가족들과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아픔이 있지만, 이해를 바랄 수밖에…….

설을 앞두고, 일이 바빠 가지 못한다 했다. 이 통보가 큰 충돌을 불러일으키리라 예상하지 못했고 결과는 큰 충돌을 야기했다.

‘가족이 모두 모이는 명절에 제사를 지내러가지 않는 것은 나쁜 일이야’ ‘잘못된 일이야’라고 판단하기 전에, 돌려서 생각해보면, ‘오죽했으면 명절에 제사지내러 가지도 못하고, 모두가 쉬는 명절에 일을 해야만 할까’, ‘위로하고 격려해줘야지’ 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모님께서야 몇 마디면, 아쉽고 안타깝지만 수긍을 하고 그 마음들을 안으로 삼킨다. ‘제사는 절대 빠져서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도 있지만, 불가피하면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 배경에는 ‘상황 이해’라는 관념도 함께 하기에 그렇다.

이해와 배려가 없다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고정관념 vs 유연한 사고

고정관념이라는 것은 경험과 학습에 의해 생겨나는 관념이다. 대부분의 고정관념은 어린 시절, 즉, 유년기에 형성되고, 청년기를 거치면서 보충된다.

사람이 유년기와 청년기를 거쳐 성장하고, 또 이후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경험과 학습, 충돌을 거치면서 제 각기의 세상을 보는 눈, 기준, 관념과 의식은 고착화된다.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그 제각기의 기준들은 매우 공고하여, 타인이 그 기준과 합치되지 않는 행동을 보일 때는 배척하고 싫어하며, 또 심할 경우 충돌로까지 이어진다. 이것은 대체적으로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심해진다.

 

최근에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결혼율의 1/3에까지 이른다는 놀라운 통계 보도를 접한 바 있다.

 

자란 환경, 성장 환경이 달랐던 남이 남녀간의 사랑으로 결혼에까지 이르는 것 까지는 좋지만, 대부분의 많은 가정이 서로에게 맞추는 데 시련을 겪으며, 홍역들을 치를 것이다.

제 각기 쌓아온 기준들의 충돌이 생겨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극복하지 못하면 파경이다.

가장 직접적이고 현실적으로 와 닿는 사례로 결혼 생활을 들었지만, 세상의 모든 일들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전쟁도 그러하려니와, 종교 분쟁 또한 다르지 아니하다.

물론 그러한 기준들은 나에게 향하는, 나를 위한 관념의 세계로 지향된다. 그 ‘나’라는 것이 범위를 넓히면 ‘공동체’가 되고, ‘국가’가 되고, 더 넓히면 ‘지구’가 될 것이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충돌’할 수도 있지만, 예를 들어 ‘외계의 침략자’를 만나면 ‘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정관념 vs 유연한 사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러한 고정관념의 세계에 나는 너무 고착화되어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본인의 고정관념들은, 유년기-청년기-사회 생활기를 거쳐 형태를 갖추고, 경우에 따라 고착화 된 것들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러한 고정관념에 대하여 경계를 해봐야 한다. 충돌이 생기면 생길수록 더 그러하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기준들도 있을 것이다.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군의 정신에까지 유연한 사고를 주문할 수 없는 것이다.
영토 분쟁에까지 유연한 사고를 주문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사의 많은 것들이 좀 더 유연한 사고로 갈등은 해소될 수도 있다. 돌려서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수도 있다. 충돌도 피할 수 있다.

 

항상 고정관념을 넘어 유연한 사고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 한번 쯤, 나의 고정관념은 어디에 있나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오래전에 작고하신 고등학교 때의, 가장 존경해왔던 국어교과 은사님은 항상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강조하셨다. 내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봄‘을 이른 말이고, 그분은 교과 성적 보다는 삶에 대한 지혜를 우선시 하여 우리들을 가르치셨다. 그 고마운 은사님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평소에 가끔 하늘을 보며, 너무도 자주 그분을 떠올린다. 길가의 돌멩이하나 조차에 대하여도 그 존재 의미를 깊이 가르쳤던 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동의 행복을 위해 고정관념의 세계와 유연한 사고는 혼자만의 노력만을 요구할 수는 없다. 함께 해야 좀 더 나아질 수 있다.

그렇지 않겠는가? 나만 고정관념을 경계하고 좀 더 유연한 사고를 한다 해도, 타인의 생각이 고정관념에 머물러 있다면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선 내가 서로에게 해가되는 고정관념의 세계에서 좀 더 벗어나 있다면, 이를 설파할 수 있고, 상대에게 좀 더 유연한 사고,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도록 주문할 수도 있으니,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나뿐만 아니라, 서로가 함께 고정관념의 세계에 너무 고착해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해야 공동의 행복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유연한 사고 vs 고정관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