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과 공포에 대하여

평범한 일상 속에 인간은 아픔을 느낀다. 인간은 왜 아파해야 하는가.

신체 부위가 다쳤으니, 또는 질병을 앓고 있기에 당연히, 그리고 막연히 아픈 것인가.

의문을 가져본 일이 있을까? 너무도 당연하기에 의문을 가질 틈이 없었을까?

통증은 신비한 인간의 감각이다.

범위를 넓히면 동물, 더 넓히면 생물체의 감각이다.

통증에 대해서 조명을 하는 것은, 인간의 생존에 대한 근본적 틀(부정적으로 보자면 감옥)을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포와 통증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완벽히 입증되어오지 못했던 「진화론」이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에 걸쳐, 비어있던 연결고리가 메워짐으로써 정설로 굳혀졌지만, 여전히 의문과 신비를 느끼게 하는 것 중 하나가 「통증이라는 감각이 생긴 이유 및 그 작동 메커니즘」이다.

예를 들어보자.

인간(포괄적으로 동물, 더 나아가 생물체이지만, 직관적 이해를 위해 인간으로 대명사 화한다. 이하 ‘인간’)은 무심코 신체의 어느 부위 하나가 상처를 입거나 병에 걸리면 통증, 즉 「아픔」을 느낀다.

이 통증은 「싫은 감각」이다. 이 통증이 싫으므로, 다치기 전에는 다치지 않으려 하고, 다친 후에는 치료를 하려 한다. 통증에 대한 「예방적, 사전적 기제」로 공포가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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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인간이 생존을 유지하는 기간 동안 완벽히 몸과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포-통증이라는 방어기제가 신체의 기본 메커니즘의 하나로 평생 작동하는 것이다.

이 「공포-통증이라는 방어기제」가 없다면,

인간의 생존은 불가능하다.

신체를 칼로 자르는 데도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면, 인간은 조그마한 슬픔이나 괴로움에도 스스로 자해하거나 자살을 해 생존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병에 걸려 아플 때에도 정상적인 신체로 복원, 생존을 이어나가려 치료를 받으려 한다.

큰 틀에서 보자면, 인간 생명의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을 포기하고자 할 때 쉬이 삶을 포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또한 「통증-공포의 방어기제」이다.



심하게 보면, 하나의 감옥, 벗어 날 수 없는 틀과 같은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인생 감옥」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이러한 감각이 생겨났을까. 이것을 진화론적으로 완벽히 설명할 수 있을까?

신의 창조설은 종교적으로 생겨난 것이지만, 만약 신의 창조설이 맞는다면, 그 위대함의 하나(인생을 정말로 감옥 같다고 여긴다면, 저주의 하나)로 「공포-통증의 방어기제」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과학적 관점에서 진화론을 인정한다면, 이 「공포-통증의 방어기제」는 영원히 매우 신비한 영역, 의문의 영역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2012.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