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설 vs 진화론 / 스스로의 종지부를  찍다.

Creationism vs Evolution Theory

I put an end to the great controversy of myself.

신은 죽지 않았다.

진화론은 맞는가? 맞다.

창조론은 맞는가? 맞다.

그러면, 모순이 생긴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마도, 이 모순에 대한 사색은 거의 20년이 된 것 같다.

오랜 사색 끝에 스스로 해답을 찾고, 몇 구절 영어로 번역하기위해 사전을 뒤져보다 “창조적 진화론(Creative Evolution, Henri Bergson(1859~1941)”을 주창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헨리 베르그송이 있음을 알고 그 대강을 5분 내외로 읽어 보았다.

 

창조설 vs 진화론 종지부를 찍다.

창조설 vs 진화론 / 스스로의 종지부를 찍다.

 

이 책을 읽은 바는 전혀 없지만, 깨달음을 통해 얻었던 나름의 결론이 이를 주장한 과거의 철학자가 있었다니,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허탈하기도 하다.

허나, 그의 생각과 나의 생각에 어떤 차이와 같음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나름의 독자적인 해석과 깨달음에 대한 내용을 포스팅하고 싶어졌다(이하).

혹자는 이야기한다.

진화론은 허점이 많으며, 각 생물 종 사이의 중간 형태가 없으며, 종과 종 사이에 진화하는 과정의 생물들이 없으며, 또한 이를 입증할 수 있는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그러나 다윈이 진화론을 창시한 이후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미궁에 빠졌던 대부분의 생물 종 화석이 속속, 대부분 발견되어 진화론이 거의 완벽한 과학적 입증 체계를 갖게 되었다.

창조설 vs 진화론 종지부를 찍다

창조설 vs 진화론 / 스스로의 종지부를 찍다.

즉, 진화론은 맞는다는 것이다.

프로그래밍된 진화

그러면, 창조설과의 모순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 한마디로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신(우주의 에너지, 생명의 에너지)은 진화를 프로그래밍 했다 / God(Life Energy, Cosmos Energy) had programmed life evolution and Life Energy(or Cosmos Energy) ) has vector for life”라고.

DNA에 생명 개체와 그 생명 개체의 유전에 대한 정보가 내장(프로그래밍)되어 있듯이, 수억 년의 시간의 축을 기준으로 볼 때 진화 또한 Programing되어 있다고.

다윈의 진화론의 허점에 대한 반증과 진화론을 입증하는 자료가 속속 발견되어 결과로서의 생명체에 대한 해석으로서 하나의 정설로 굳혀진 거나 진배없지만, 그 외에 여전히 설명되지 많은 부분이 있다.

진화론 vs 창조설 종지부를 찍다

진화론은 종의 역사 즉, 결과로서의 생명체를 설명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 대한 완벽한 해석은 아직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돌연변이설, 용불용설, 적자생존설, 자연도태설 등이 있지만, 그 이유와 과정(Why and How)에 대한 완벽한 과학적 입증은 쉽지 않다.

그리고 인간을 하나의 생명체로 봤을 때, 셀 수 없는 설명이 안 되는 “생명 현상”이 여전히 존재한다.

예를 들자면, DNA가 유전 정보를 갖고 있는 사실은 맞지만, 그 DNA가 어떻게 만들어졌냐 하는 것이다.

게다가 “성(Sexuality), 꿈(Dream)…….”등 셀 수 없는 다른 예도 있다.

창조적진화론 창조설 진화론

물질과 물질이 우연히 만나 단백질을 이루고, 또 우연히 세포를 이루고, 단세포 생물을 만들고, 해양 생물, 식물, 동물을 만드는 과정 속에는 진화의 에너지 또는 생명의 에너지가 존재한다.

이 에너지는 방향성을 갖는 벡터(Vector)이다.

그 벡터는 생명을 지향한다.

베르그송은 비슷한 개념으로 “심적 충동”, “우주 운동”이라 표현 했지만(불어 원문을 보지 못해, 번역이 정확히 되었던지는 알 수 없으나), 이것은 물리적 기계적 방향성은 아니지만, “생명”으로의 방향성을 가지며, 과학에서 정의된 “에너지”를 이용하는 그 무엇인가에 틀림은 없다.

이것은 시간의 축 선상에 있다. 베르그송은 더 나아가 “해체(죽음)”의 방향성에 대한 언급까지 했다.

이 포스팅에서는 “해체”로의 방향성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우주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거대한 또 다른 에너지가 있다.

인간은 그것을 볼 수도 없고, 직접적으로 인지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것은 실재한다.

베르그송의 말을 빌리자면 “생명이라는 질서”로 강하게 이끄는 그 어떤 힘은 반드시 존재한다.

본인은 이를 “생명 에너지”, “우주 에너지” “신의 에너지”로 표현하고 싶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생명체는 최종적으로 “인간으로의 진화”를 이끄는 그 어떤 힘이 존재했었고, 지금도 지구상에는 그런 에너지는 여전히 강하게 내리쬐고 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에너지이며, 동시에 우주가 갖고 있는 에너지이며, 결국은 어쩌면 신(神, God)의 에너지일 것이다.

길고 긴 시간의 축 선상에서, 우주 속에서 갖고 있는 생명의 에너지로 진화되어 왔다고.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창조설, 진화론, Creationism, Revolution Theory

한편,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신은 믿는다.

정확히 27세가 되던 해에 신과 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었다. 나이 30을 넘기고 창조설의 주체로서의 신과 과학으로서의 우주, 생명의 모순에 다시 기나긴 사색의 방황에 빠져버렸다. 끝을 알 수 없고, 헤어날 수 없는 긴 암흑의 터널을…….

속속 메워지는 진화론의 허점들,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1879.3.14 ~ 1955.4.18], 스티븐 윌리엄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CH, CBE, 1942년 1월 8일 ~ ) 박사와 같은 천재 물리학자들에 의해 속속 밝혀져 온 우주의 신비 그리고 철학들.

호킹 박사는 이런 말을 했었다. 신은 죽었다고.

나는 다시 말한다. ‘신은 죽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외로운 우주, 과학의 오만

호킹 박사가 ‘신은 죽었다’고 말한 것은, 우주와 존재는 ‘생각’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우주와 세상은 이를 관찰해줄 인간의 뇌, 즉, 생각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인 또한 약 30여 년 전에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우주는 나의 생각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이를 인지 해줄 인간의 뇌가 없다면, ‘우주는 없는 것’이라고……. 이 말도 맞다.

진화론도 맞고, 창조론도 맞듯이.

그러나 다시 최근에 관점을 바꿨다.

눈을 통해 들어오고, 뇌를 통해 인지되는 우주가, 만일 내가 죽는다면 ‘우주는 없는 것’처럼 여겨지나 우주는 나와 상관없이 존재하듯이,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나는 모른다.’라고, 모르기에 신은 죽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우리는 모른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블랙홀을 몰랐을 때는 블랙홀은 존재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블랙홀을 몰랐을 때는 블랙홀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알게 되었을 때는 그것은 실재하는 하는 것이 되었다.

The fact that i don’t know and the fact that i am not in existence are clearly different. I in existence can say that If i am not in existence, I just don’t know the existence of me because I do not know the status of my being-not existence case.
Therefore, we have to say and think the existence of God and cosmos in the view of our being in existence.
Same as that, we can not determined “God is dead”

모순된 것처럼 보인 두 가지 이론 진화론과 창조론이 (아주 길고 긴 시간의 축으로) Program된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맞을 수도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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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현대 과학으로 생명과 우주의 신비 90%를 밝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1,000년 지난 후에 인간은 말했다. 1,000년 전의 그 과학은 90%가 아니라 9%였고 지금의 과학이 90%라고.

다시 1,000년이 지난 후 인간은 말했다. 1,000년 전의 90%는 9%였고, 지금의 과학이 90%라고…….

Human said ‘We have solved the 90%of the mysteries of life and cosmos with Science’. After 1,000 years, Human said ‘The science of 1,000 years ago was 9%, not 90%, and the present science is 90%’
Again after 1,000 years, Human said ‘The science of 1,000 years ago was 9%, not 90%, and the present science is 90%’…….

나는 신이 존재하는 지는 정확히는 모른다.

다시 말하면, 신이 존재하는 것도 맞고, 신은 죽었다는 말도 맞다.

이것도 결국 모순처럼 보이나, 창조설과 진화론이 모순처럼 보이지만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듯이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동시에 내 본능과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나를 지배한다.

“신은 존재한다.”고. “우주는 외로웠었다.”고.

I do not know correctly God is in existence. However, simultaneously my instinct and the something not to explain take control of my thought and mind as “God is in existence, and Cosmos had felt lon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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