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슬픔의 근원에 대해서 #3

About the root of human sadness #3

당신은 살아있습니까? | Are you alive?

그러니 이 글을 읽을 수 있겠죠?

2010.02.08일 썼던 글을 이제 블로그에 아주 약간의 수정을 거쳐 포스팅합니다.


나는 산다 | I live

나는 산다. 살아 있다. / I live. I am alive.

바른 길로 살아가는 건지, 무의미하게 세월을 축내는 건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하여튼 같은 시대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과 함께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 I do not know whether I live rightly or in idleness, but, Anyway,  I continue my living with all the things contemporary 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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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자유

손가락을 움직여 컴퓨터 자판도 칠 수 있고, 음식도 불편없이 먹을 수 있다. 소변도 대변도 불편 없이 볼 수 있다.

팔도 다리도 맘대로 움직일 수 있고, 걸을 수도 있으며, 산에도 갈 수 있다. 눈을 뜨고 사람과 사물을 보고 식별할 수도 있으며, 커피도 마실 수 있다.

잠도 잘 수 있고, 말도 할 수 있고, 냄새도 맡고, 기뻐하거나 웃을 수도 있고, 노할 수도 있으며,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으며, 슬플 땐 울 수도 있다.
글도 쓸 수 있으며, 노래방에서 노래도 부를 수 있고,

하늘을 우러러 구름과 별을 보며, 숨도 마음껏 쉴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술도 마시고 쏘다닐 수도 있다.

못하는 것이 없다. 일일이 다 나열해보면 이보다 수만 가지의 일들을 더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나는 무한 자유를 누리고 살고 있다.

무한 구속

나는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 한 치 앞 미래도 알 수 없다.
태어난 것을 되돌릴 수도 없으며,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상념은 할 수 있어도 그 길과 현재의 길을 두 가지 모두 체험 할 수는 없다.

기구나 장비의 도움 없인 하늘을 날 수도, 물속에서도 살 수 없다. 달나라도 갈 수 없고, 갖고 싶은 고가의 물건을 가질 수도 없다.



벽 너머의 사람도 볼 수 없고,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밤하늘의 별을 보기만 할 뿐 거기 갈수도 없다.

가까운 사람의 마음도 내 마음대로 못하며, 정확히 알 수도 없어 아파하며 싸우기도 하고, 갈등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못하는 것이 너무 많다. 일일이 다 나열하자면 이외에도 수만 가지의 일들을 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무한 구속 하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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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흘릴 수 있는 권리

아이티 대지진이 일어나 35만 명이 생명을 잃었단다.

2011년 3월에는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 2만여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었고, 약 33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그렇지만,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속에선 까마득하게 잊혀진 과거일 뿐이며, 그저 무감각한 일일 뿐이다.

그 대지진의 상황 속에 있었다면, 갑자기 땅이 흔들려 무섭고 건물의 골재들이 머리위로 우수수 떨어졌을 것이다.

어찌하여 나는 머리와 몸 여기저기 큰 상처를 입고, 건물 잔해 속에 묻혀서 모진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지도 모를 것이다.

다리와 팔은 움직이지도 못하며 살려 달라 소리를 지르고 또 질러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일 뿐.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 간 일일수도 있지만,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스촨성 대지진, 동남아 쓰나미, 유태인 대학살사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수없이 벌어진 전쟁 등으로 인하여 소위 개미보다 못하게 죽어간 수없는 사람들이 있엇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생사와 고락은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의문과 궁금증을 낳기도 한다.

다만, 살아있다면, 슬퍼할 수는 있다.

슬퍼할 수 있는 것은 산 자에게만 주어진 매우 특별한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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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두 가지 종류

사람의 슬픔에는 크게 봐서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가 있다.

그 하나는 슬픔을 유발하는 상황으로 인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것과,

또 하나는 감당하기 힘든 상처로 인하여 생기는 병적인 슬픔이다.

전자는 보통의 경우 그 상황이 지나면 주위의 관심과 배려, 그리고 본인의 노력,

시간의 경과에 따른 기억의 소멸 내지 흐려짐, 자연치유력 등으로 대부분 복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슬픔을 발생시킨 원인이 소멸되지 않는다면 복원이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후자의 병적인 슬픔보다는 좀 더 나은 상황에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무언가 인류 역사와 함께 해온 사람의 슬픔을 해소할 수 있는 정신적 깨달음 내지 방도를 얻고자 했지만, 아직 아무것도, 지푸라기 하나 얻지 못하고 미궁을 헤매는 건 어떤 연유에서 일까.

미국의 저명한 한 연구소가 참선을 오래해온 고승의 뇌파를 분석해본 바가 있다한다.

결과는 일반인의 뇌와 달리, 행복을 느끼는 지표로 알려진 감마파가 훨씬 많이 나온다고 한다.

또 이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국 인간은 슬픔의 사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중생의 삶에서 탈피하여 불교의 참선과 같은 오랜 수행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닐까?

– 2010.02.08.

[  인간 슬픔의 근원에 대해서 #4 / About the root of human sadness #4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