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시절 [ 이금선 ]
내 어렸을 적
아버지가 참 좋았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땐 철이 안 들어
좋은 줄도 몰랐지요.
가정 사정으로
학교를 그만두자
다닐 수 없는 형편인데도
학교에 왜 안 가느냐고 나무랐지요.

만일 그때 그만두지 않았으면
오늘의 이 좋은 선생님들, 친구들과의
만남은 없었겠지요.
그래서
고맙습니다.
그 시절 아버지에게…….
이 詩는 푸른시민연대 어머니학교에 다니는
이 시 한 편은 푸른시민연대 어머니학교에 다니는 팔십 중반 고령의 어머니 시입니다.
지금 연세로 팔십 중반이면 1930년대생이시고 일제 치하에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당시 김해 주촌이라는 첩첩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가정 사정으로 다른 식구들을 돌보느라 한글을 깨칠 교육 기회를 잃어버리셨고,
뒤늦게 푸른시민연대 어머니학교에서 한글을 깨치고, 쓰고 싶은 시 한 편을 쓴 것입니다.

A4 용지에 배경 그림을 군대 군데에 넣은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이 시 한 편을 받아들고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화려한 언어 구사는 없지만 칠십 년을 넘어 세월을 관통하여,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지금의, 오늘의 푸른시민연대 어머니학교를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당신의 삶을 긍정으로 승화하여 순백(純白)의 언어로 담아냈기에 더더욱 가슴이 찡해 왔습니다.
어머니는 요즘 학교 과제물로 글을 써서 제출하면 선생님이 그러신답니다.
누가 대신 쓴 글이라고…….
그리고 그것을 집에 돌아와서 툴툴거리신답니다. “내가 썼는데, 선생님이 자꾸 다른 사람이 쓴 거라고…….”
선생님께서 이 글을 볼 리가 없겠지만, 선생님, 요즘 어머니의 글은 당신께서 직접 쓰신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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